작은 약속, 큰 리더
약속을 어긴 친구를 그대는 용서할 수 있는가? 약속장소에 10분 늦게 온 친구를 용서할 수 있는가? 30분 지각한 친구, 1시간 지각한 친구도 용서할 수 있는가? 약속시간 직전에 카톡으로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간다’고 알려온 친구도 용서할 수 있는가? 어느 선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10분까지는 용서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안된다는 식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1시간 지각도 용서할 수 있는 반면 10분 지각도 용서 못할 수도 있다. 필자는 진정성을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지각에 대해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느냐가 중요하고,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언젠가 학생이 묻고 필자가 답했다.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인가?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가 좋은 친구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약속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생각만으로 되는가?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약속을 모두 지키며 살기란 쉽지 않다. 약속을 지키려다 보면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구 때문에 상처받은 경우가 한두 번이던가.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친구가 떠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는 뒤늦게 깨달았다. 약속, 함부로 하는 게 아니구나.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키는 습관을 들였어야 했구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 했구나. “밥 한 번 먹자"는 빈말을 함부로 내뱉지 말았어야 했구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사과했어야 했구나. 곧바로 진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구나.
창업계에 ‘스생컨'이란 연례행사가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를 일컫는데, 창업계 리더 200여명이 모여 1박2일 동안 발표하고 토론하고 친분을 쌓는 행사이다. 이 행사의 특징은 초청받은 사람만 참가할 수 있고, 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다시는 초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행사가 유명해지면서 창업계에서는 ‘노쇼(No Show)’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예고 없는 노쇼'는 ‘죄'라고 여길 정도가 됐다. 창업자한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까지 만나고 다닐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큰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예고 없는 노쇼' 때문에 가슴앓이를 한다. 우리나라 음식점 예약부도율은 20%에 달한다. 음식점 예약을 거리낌없이 파기하는 사람이 친구 약속이라고 잘 지킬까.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접을 받으려면 ‘노쇼’를 금기시하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는 ‘글로벌 에너지 리더 양성'을 기치로 걸고 설립됐고 2022년에 1기 신입생이 입학했다. 필자는 가치창출센터장(일반 대학의 산학협력단장)으로서 학생들과 리더십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눈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리더가 된다. 리더는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한다. 리더가 실수하면 조직원들이 고통을 겪는다. 실수를 줄이려면 실력과 의욕과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힘의 근원은 인격이다. 약속을 지키고, 배려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조직의 힘을 결집할 수 있다.
대학에서 창업학풍 조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의 ‘노쇼' 때문에 상처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속을 어긴 학생들이 야속하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필자는 대학생 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이 작은 약속도 잘 지키는 큰 리더로 성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운 게 많다. 무엇보다 멘토가 없었다는 게 아쉽다. 대학시절에는 지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사소한 약속도 꼭 지켜라, 호의를 베푼 이에겐 어떻게든 감사 표시를 해라. 이런 잔소리를 해 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훗날 실수를 훨씬 적게 하지 않았을까.
김광현 가치창출센터장∙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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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인것 같아요!